2008년 05월 27일
[일용할 양식] 5월 27일 화요일 민수기 27:1~11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오늘 본문은 기업의 분배 가운데에서 특이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자손 중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찾아왔습니다. 당시 사회는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라 여성으로서 발언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임에도 회중 앞에 서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27:3~4)
슬로브핫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가나안 앞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다가 징계를 얻어 가나안 입성 전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고라의 무리들과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누구에게나 있는 죄 때문에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자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아들이 없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생각하기에, 자기들의 남자 형제가 없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중에서 기업을 잃는 것은 불합리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아도 불합리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관점으로는 합리적이었을 것입니다. 원래 통상적으로는 재산의 주인은 남자만이 될 수 있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가지고 나왔고, 또 모세는 이 문제를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시대의 합리성이나 도덕성 이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만약 사람들의 관념이나 문화를 먼저 생각했다면 결코 회중 앞에 나와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 또한 세상적인 질서나 편견을 먼저 보았다면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생각에 도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원칙을 실현시켰습니다. 딸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딸이 차별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시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이 중에 무엇이 소중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리가 더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리를 별다른 이유 없이 포기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또, 시대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묻는 것이 옳은 줄 알았기 때문에 모세는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남자 형제가 없을 때에만 딸이 상속받을 수 있는 율법이었지만, 이는 남자 형제가 자신의 자매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시로서도 여성에게 불리한 법은 아니었습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지금도 여성이 차별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과 공부 못 하는 사람 간에도 불합리한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별'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차이로 인해서 다른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못생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못생긴 것이 아닌데, 못생겼기 때문에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차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슬로브핫의 죽는 날에 그의 아들을 두지 않으신 것은, 슬로브핫의 가족 중에는 아들이 없는 것이 더 좋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그들은 여자인 편이 더 좋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하셨는데 사람이 이를 차별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차이를 두신 것은 차별하기 위함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저는 저보다 못한 사람을 차별하여 대우하고, 저보다 잘난 사람과 저를 비교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학생이니 학업에서, 어떤 때는 외모에서, 어떤 때는 경제적인 면에서 비교의식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승리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두신 것은, 잘난 사람이 잘 나가고 못난 사람이 못 나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차이를 보고 차별하기보다, 차이를 보고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by | 2008/05/27 20:42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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