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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5월 24일 토요일 민수기 23:1~12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발람은 발락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막으시고 그의 입을 열어 이스라엘을 오히려 축복하셨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위해 일곱 제단과 일곱 마리씩의 수송아지와 숫양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 숫송아지와 숫양은 효력이 없었습니다.

  발락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락의 소원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발락과 발람의 연합을 뒤엎으시고 발람에게 이와 같은 선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23:8~9).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를 사람이 저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저주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바라볼 눈을 주시니 발람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홀로 살 민족'이었습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고립되어 외롭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민족과 부대끼며 그들 중 하나로 정체성 없이 살 민족이 아니라, 구별되어 특별하게 살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23:10). 이는 이스라엘의 수효가 충만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발락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 저주가 효력이 있어 이스라엘이 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발람의 저주나 축복은 위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락은 이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는 것은 발람의 축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민족 중에서 구별하여 홀로 살 민족으로 세우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인생을 사는 사람의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한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남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다름이 있어야 사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기분나빠 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 인생이 그저 거대한 기계의 사소한 부품이 아닌가 하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입는 옷과 하는 일의 겉모습이 사람의 다름을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의 다름은 그의 내면에서 먼저 드러나고, 그럼으로 인하여 그의 삶의 실제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면이 변화되지 않으면 다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면이 변화되면 약속을 얻고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삶'을 살아서 의미 있는 인생을 얻고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by 감람나무 | 2008/05/24 23:18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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