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6일
[일용할 양식] 3월 16일 일요일 마가복음 5:21~43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본문은 부활절이 가까워오는 때에 잘 어울리는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유명한 야이로의 딸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맞은 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가지고 나갈 인생 문제들, 예수님을 트집잡을 생각들, 또는 호기심들을 가지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유대인의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회당장은 그런 공동체의 지도자였습니다. 회당장은 그러나 예수님을 보고는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겸손하게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남들 앞에서 고개를 세우고 다녔던 회당장이었지만, 자기 권세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해결 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이것입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5:23).
예수님은 이 회당장의 말을 듣고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를 따라 나서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때에 바로 회당장의 집까지 가
지 않으셨습니다. 죽게 된 어린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척 중간에 다른 일을 하셨습니다. 바로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무리들이 걸어가는 가운데 혈루병을 앓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12년 된 혈루병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그냥 지나치셔도 될 것을 예수님은 굳이 이 사건을 돌아보셨습니다. 무리들을 향하여 물어보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5:30).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누가 그의 옷을 손을 대었는지는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하시고는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펼쳐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예수님의 앞에 당당히 나아와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여인은 능력을 얻기를 원했으나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있어 정상적인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몸의 병은 나을지라도, 어두운 마음은 치유받을 수 없습니다. 여인은 몰래 능력을 빼어 쓰는 일밖에 하나님께 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방법을 알려주시기 위해, 여인 한 사람을 위해 무리 중에서 돌이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여인은 모든 것을 고백하였고,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병에서 놓여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이면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죽어가는 딸을 생각하는 야이로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때에 그 딸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회당장에게 예수님을 돌려보낼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딸을 살리러 오시는 예수님이라도 딸이 죽은 다음에는 소용이 없다는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사실은 한계적이고 운명적이며 종말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 사람들의 생각은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이 되돌아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생각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아주 비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이 한 말씀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사람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믿음'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두려움은 그 실제적인 힘이 매우 강하지만, 하나님이 두려움을 정복하실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 두려움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믿음을 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당장도 딸이 죽었기 때문에 두려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믿음이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기도하면 딸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때라도 회당장을 도우셨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께 한 기도는 예수님이 그것을 들어주시기로 작정한 때부터 이미 이루어지기로 결정된 것입니다. 딸이 죽었어도, 예수님은 그 딸을 살리기로 작정하셨으므로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 사실은 비정상적일 수도 있음을 배웠습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한것임에도, 마치 자신이 세상을 더 잘 안다는 듯 기도보다 자기 눈을 더 믿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계획을 세울 때 기도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눈을 의지하기를 원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만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 계획을 세워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욱 믿음을 가지고 저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가복음은 때로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보여주곤 하는데, 이 본문도 그 중 하나의 케이스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고 쓸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소감을 쓰면서 아마 내가 이 본문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번 수양회 때 GBS를 인도할 때의 이 본문에 대한 이해도는, 이 글을 쓸 때보다 좀 더 좋았었다.(즉, 지금 내 기준에서 올리기엔 굉장히 쑥쓰럽고 민망한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수준이란 뜻이다.. 사실 모든 글이 그렇다)
2008.5.12
# by | 2008/03/16 15:24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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