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9일
[일용할 양식] 12월 9일 일요일 고린도후서 5:11~21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하여 말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외모를 기준으로 삼아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돈이 많음을 자랑합니다. 자기가 비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 삼기도 합니다. 혹은 자기 집이 넓고 좋은 새 집임을 마음으로부터 자랑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생은 자기 훌륭한 외모나 성적을 자랑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이들에게 대답할 것은 무엇입니까?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의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바울과 같은 전도자들은 양들이 아직 믿지 않을 때에 말씀을 전해 그들이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이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은 얼마나 자랑할만합니까? 사람이 미쳐도 예수님을 위해 미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그의 양의 무리를 위해서 그러할 만큼 자랑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외모로 삼은 것들은 다들 어느 만큼씩 소중한 것입니다. 돈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가 돈 없이 멋있는 삶을 살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명예가 없이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권력이 없이 무슨 수로 어깨를 펴고 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아무리 소중해도 이것에 자기 자신을 바칠 수는 없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향해서는 자신을 바칠 수 있습니다. 미치거나 정신이 온전하거나 모든 것이 그를 위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 때 자기보다 완전하고 세상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 헌신하는 사람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헌신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복음전파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않을 수 없는 기쁨을 그 마음에 주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아날 모든 사람은 곧 죽을 육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옛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 것을 알고 이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처음 알았던 육신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몸이 죽는다고 그가 다 죽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접했다면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한계적인 존재로 계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약속이 깨지면서 사람이 한계적이고 운명적이고 패배가 약정된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 사람은 다시 원래의 가치 있는 존재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은 또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죄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예수님이 죄 있는 우리 대신에 죄인의 취급을 받으셨으므로 가능합니다. 이를 통하여서 우리가 죄인이면서도 의인의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주고자 하는 결론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만이 모든 것 위에 자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다면 돈으로 얻는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제가 사람 사이에 인기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과 화목하지 안다면 인기는 허무한 것입니다. 제 옆에 사람이 없고 돈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는 영원하신 저의 방패이며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하는 소원을 갖는 것 자체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기이한 방법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숫자로 보이는 물질이나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화목하고자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른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함을 유지하여 가치 있는 하루를 보내는 데에 성공해야겠습니다.
# by | 2007/12/09 15:55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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