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일용할 양식] 7월 2일 월요일 마태복음 26:31~75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늘의 양식은 예수님이 유다의 배신으로 인하여 체포되는 장면을 그린 부분을 본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를 위해, 또 예언의 성취를 위해 감람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짧은 시일 내에 이루어질 많은 예언을 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6:31),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

  각자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예언은 특이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제자 중 하나인 베드로의 배신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는 예언에 맞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확신에 찬 어투를 짓밟아버리듯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고 강하게 부정합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마음은 거짓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라시는 마음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소원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자이지 사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이를 잘 몰랐으므로 강국 유다의 재건을 꿈꾸었고 자신은 그곳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 노릇을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그것은 주님을 따를 때 비록 육신이 죽을 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확고하므로 그리 고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 받을 리 없다는 생각과 예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숭배와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다짐을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쳐서 깨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어느 때에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절박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도록 결단하는 것은 대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비장한 각오만을 다지고 말씀을 받을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순종 뒤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대함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따르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을 지키십니다. 믿는 사람이 또한 순종하게 되는 것은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이지 인간적인 의지가 강하고 각오가 투철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제가 확고한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주님의 뜻에 복종시키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겟세마네에서 제자들과 잠시 떨어져 기도하십니다. 먼 거리를 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따로 데리고 가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26:38).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기까지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받으실 고통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육신의 고통으로 다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후에는 하나님의 죄인들을 향한 저주를 모두 대속하시기 위한 고통이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는 신명기 말씀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예수님이 받으실 잔은 모든 각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마시는 고통의 잔입니다. 예수님이 이 잔을 마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예수님이 이렇게 연약한 기도를 합니까? 그것은 그 잔이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이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혹시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시거든 그리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이라는 기도문은, 만일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거든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간적인 소원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체포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에도 굽히지 않으시고 사역을 멈추지 않으시고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26:55~56),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26:63~64).

  예수님은 하실 일을 다 하셨으나 베드로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다짐은 철저히 무너집니다. 그는 실로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드러나면 자신도 정죄받을 것이므로 그것이 두려워 이전의 다짐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킬 만큼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알고서 부인한 적은 없지만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많습니다. 매일 말씀 안에서 새로워지겠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대로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급한 일 앞에서 하나님을 찾는 일을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가 연약하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저도 연약하여 잘 하지 못하는 일이 많지만 주님께서 은혜 허락하시면 은혜 속에서 강하여지도록 기도합니다.


복음서 양식도 매일 썼지만 옮기기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워낙 좀... 그래서;;

by 감람나무 | 2006/07/02 21:36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byfaith.egloos.com/tb/33259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