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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8월 6일 수요일 이사야 13:1~22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오늘 본문은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해 받은 경고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전하시는 예언 중 바벨론이 언급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사령관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군대를 점검하시고 진군시키십니다. 이 날이 하나님의 날이고, 이 날은 멸망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멸망의 날을 이만치 미뤄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면 공의를 행하시고 멸망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에 대한 묘사는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손의 힘이 풀리고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해산이 임박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이 불꽃 같으리로다"(13:7~8). 이사야의 문학적인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다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감을 다해 기록했습니다. 심판의 때에는 긍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행하십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이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13:11~12). 하나님은 악과 죄를 미워하시고 교만한 사람에게 승리를 주지 않으십니다. 잠언은 하나님이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하시는 것과 교만한 자를 패망하게 하시는 것을 기록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교만한 자가 받는 벌은 마지막 심판의 때, 세상 멸망할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미 형벌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고통합니다.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늘 노력하더라도 늘 목마릅니다. 죄를 끊을 결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본질적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렇게 행하며 점점 더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망했음을 깨닫고 슬퍼합니다.

  이것이 겸손함을 잃은 사람이 겪는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 즉 하나님을 아는 자를 그도 알아 주시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다르게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크지만, 그것을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긍휼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도 같은 복을 받는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는 관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와 같이 행하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by 감람나무 | 2008/08/06 16:58 | [ 일용할 양식 | 트랙백 | 덧글(0)

[일용할 양식] 8월 5일 화요일 신명기 34:1~12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오늘 말씀은 모세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만 믿고 광야 40년과 또 40년을 견뎠습니다. 이것은 아주 오랜 세월에 광야에서 살았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배반 끝에 딱 한 번 순종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에 따라 광야에 들어가지만, 수 많은 순종과 함께 한 번의 불순종을 행했던 모세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잔인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말씀에 거역하고 요단강 도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에 들어가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길을 택합니다. 모세는 이 때까지도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순종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적인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의 결정이라면 모세는 기를 쓰고라도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신이 애굽의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이스라엘을 택했는데, 그래서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는다니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과 만나는 중에 이 땅을 받음이 진정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알려주신 다른 축복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의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의 백성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인도하심을 따르는 훈련을 해야 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나안 땅 자체를 얻게 하시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이 일을 겪은 자와 이 일은 읽는 자가 모두 구원을 배우고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을 배우고 정복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그가 하나님이 주실 기업을 받고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얻어 하나님을 상급으로 여기고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모세의 절대적인 순종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도자입니다.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이제 보니 모든 싸움의 열매는 여호수아가 다 가져가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의 이런 사정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순종을 기록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뒤에 있는 그의 축복을 단순하게 믿었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땅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이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모형으로 쓰셨지만 그것은 본질은 아닙니다. 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땅을 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땅에 들어가기보다 말씀에 순종하기를 택한 것은, 가나안이 모형일 뿐 축복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모세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기도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먼저 순종했을 때 더 좋은 연구 결과를 얻는다거나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키우시고 그가 더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그가 주시는 표적을 더 사모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보다 밥과 집을 더 사랑할 때 불평에 가득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므로 항상 감사가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by 감람나무 | 2008/08/05 09:2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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